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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미디어

[책] 곁에 두고 읽는 니체

by NAMP 2016. 4. 3.

곁에 두고 읽는 니체에서 나온 문구들을 옮겨 적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에 이어질지 모를 장벽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나는 너무나 많은 꿀을 모아버려서 이제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나의 꿀을 전부 가져가라.

나는 단지 피를 쏟아서 쓴 것만 사랑한다.

먼저 대담하게 자신을 믿는 것이 좋다. 그대들 자신과 마음을 믿는 것이 좋다. 자신을 믿지 않는 자의 말은 언제나 거짓이 된다.

그때는 원기둥의 모습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원기둥은 높으면 높을수록 가늘어지고 아름다워지지만, 그 내부는 더욱 굳세어져서 무엇이라도 짊어질 수 있게 된다.

욕망이 삶의 기쁨을 구가하는 일임에도 그것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인간성을 파괴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천상의 것들은 신의 영역에 속하지만, 대지의 것들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품어야 할 대상이다. 천상의 것들은 이간의 외부에 있지만, 대지의 것들은 인간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알게 된다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기뻐하는 기분 따위는 자기 자신안에서 깔끔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타인에게 고통이 되는 것을 생각해내는 일도 아예 사라질 것이다.

작은 일에도 최대한 기뻐하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덩달아 기뻐할 정도로 즐겁게 살아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마음을 어리젋히는 잡념을 잊을 수 있고, 타인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심도 옅어진다. 부끄러워하거나 참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싱글벙글 웃어라.

자기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영웅을 외면하지 마라. 더 높은 곳을 향한 꿈과 이상을 아루 오래전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이 말하지 마라. 살면서 어느 사이에 꿈과 이상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비웃게 되고 시샘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러면 발전하겠다는 의지나 자기 자신을 극복하겠다는 강고한 마음 또한 버려지게 된다.

그대는 새로운 힘인가. 새로운 권리인가. 시초의 운동인가. 자신의 힘으로 도는 바퀴인가. 그대는 별들에도 지배의 힘을 미쳐 그대 주위를 돌게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대가 희망과 사랑을 결코 버리지 않는 사람이기를, 그대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영웅을 절대 버리지 않기를, 그대가 희망하는 삶의 최고봉을 계속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며 똑바로 응시하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아직 본 적이 없는가. 돛이 둥글게 부풀어 거센 바람에 펄럭거리면서 바다를 건너가는 것을. 그 돛처럼 정신의 거센 바람에 펄럭이면서, 나의 지혜는 바다를 건너간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 자기를 상대해 줄 친구를 찾고, 막연한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할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기쁨을 나누는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고독으로 인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인가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으면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용기는 죽음을 죽인다. 그때 용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한 번도 추지 않았던 날은 일어버린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큰 웃음도 불러오지 못하는 진리는 모두 가짜라고 불러도 좋다.

그대들 자신을 뛰어넘어 크게 웃는 법을 배워라. 그대들의 가슴을 활짝 펴라. 높게, 더 높게! 멋진 무용수답게 큰 웃음소리도 잊지 마라.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함과 망각 그 자체다. 아이들은 또한 새로운 시작과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 거룩한 긍정의 존재다. 은 천진난만함 그 자체로, 이는 춤이 몸 이전의 몸이기 때문이다. 춤은 망각으로, 이는 춤이 몸 자체의 무게를 잊게 하기 때문이다. 춤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것은 춤을 추는 동작이 스스로의 시작을 새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대의 사상과 감수성 뒤에는 강력한 지배가자 있다. 그대가 모르는 그 현자의 이름은 본래의 나다. 그대의 육체 안에 그가 살고 있다. 그대의 육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육체는 하나의 거대한 이성이고,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다양성이다. 육체는 또한 평화이며 가축의 무리이자 양치기와 같다. 형제여, 그대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대의 작은 이성은 몸의 도구이며, 그대의 커다란 이성의 작은 도구이자 장난감이다. 이제 세계는 거대한 이성으로서의 육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복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람을 보라

사람은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깍아내리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항상 존귀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탄 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라.

나의 시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에게는 그런 시대가 죽은 뒤에야 나타나기도 한다. 언젠가는 내가 이해하는 삶과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즐거운 학문

똑같은 것을 대해도 어떤 사람은 거기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한두가지 밖에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를 능력 차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풍요롭게 해줄 대상을 찾지 말고, 나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능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자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사람은 항상 껍질을 벗고 새로워져야 하고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층 새로운 자기를 만들기 위한 탈바꿈을 평생 동안 멈추기 마라.

그대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고들어라. 샘은 바로 걱에 있다. 자기에게 딱 맞는 무엇이 이곳이 아닌 아주 먼 곳에, 가령 아직 가보지 못한 타국 땅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선을 두지 않았던 발아래에 그대가 추구하는 것, 그대에게 주어진 많은 보물들이 잠들어 있다.

어떤 특별한 일로 세상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은 독창적인 게 아니라 그저 주목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말로 독창적인 사람은, 다른 이들도 이미 보았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서 변변한 이름조차 없는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그것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이름이 주어지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이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하늘에 닿을 뜻이 키가 큰 나무들에게 거친 바람과 악천후가 없었다면 그런 성장이 가능했을까? 인생에서 거친 폭우와 강렬한 햇살, 태풍과 같은 온갖 악과 독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이 가급적이면 없는 게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탐욕, 폭력, 증오, 질투, 아집, 불신, 냉담, 그 밖에 모든 악조건과 장애물들… 이러한 악과 독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극복할 기회와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단련되는 것이다.

아침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면 자기 자신까지 기쁨이 넘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양손에, 그리고 가슴에 기쁨이 가득할 것이다.

천부적인 능력이 없다고 비관하지 마라. 재능이 없다면, 그것을 습득하면 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성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습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살면서 때로는 멀리 보는 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친한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생각하면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그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처럼 어떤 대상과 얼마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많은 것들일 생각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을 실현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다. 그때는 그 꿈을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허약한가? 용기가 부족한가? 그대의 꿈 이상으로 그대 자신인 것도 없다. 그 꿈을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그대가 온 힘을 대해 이뤄내야 할 평생의 숙제다.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끝내 죽고 말듯이 인간도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 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 만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역사를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도서관의 낡은 서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매일의 삶 자체가 곧 역사다. 두려워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오늘 하루를 마쳤는가, 게으르게 보냈는가, 용감하게 도전했는가, 어떤 일을 어제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행했는가, 이 같은 태도들이 하나하나 쌓여 매일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감동하며, 울고 웃으면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평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욕망을 갖고 있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을 갖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따라서 누군가 평등을 부르짖을 때는 그가 말하는게 어느 쪽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한 법이지만, 무슨 일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배우고, 지식을 쌓고, 그것을 교양이나 지혜로 확장해나가는 사람은 삶이 지겨울 틈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전보다 한층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사소한 데서 교훈을 찾아내고, 사고의 빈자리를 채울 정보를 얻어낸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삶은 더 많은 지식과 의미 있는 충만함으로 가득해진다.

창조적인 일을 하든 평범한 일을 하든, 항상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임해야 순조롭게 잘 풀린다. 그래야 사소한 제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평생 이런 마음을 지켜나가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상의 황혼

모든 시대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똑같은 결론을 내렷다. 언제 어디서든 그들은 침울함과 권태감에 가득한 채 몹시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리고 삶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록 말했다. '삶이란 의미 없는 것이다’라고. 심지어 소크라테스조차도 임종을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산다는 것은 오랬동안 병들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소크라테스도 인생에 지쳐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왜?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아주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금세 알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을 흉내내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나의 길이 명료하게 보이기에, 이제 남은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플라톤, 공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교사들… 이들은 거짓말을 지껄이면서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굳게 믿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로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의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방장자와 그 그림자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너무 소홀이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고, 정욕 때문에 아이를 낳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들은 현재보다 더 나은 멋진 삶은 여기가 아닌 어느 먼 세상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이제 현재의 삶을 확고히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흔들림 없는 믿음의 시선을 보내야 한다. 이런 태도만이 우리를 제대로 살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방면에서의 다양한 체험이 사람을 한층 현명하게 만든다. 따라서 살면서 체험하는 모든 일들이 유익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무엇인가 체험하고 있을 때는 완전히 몰두해야 한다. 중도에 체험하는 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러면 전체를 마음껏 차분하게 집중할 수 없다. 반성이나 관찰은 그 뒤에 오는 것으로, 이 때 비로소 새로운 지혜가 생산되는 것이다.

권력에의 의지

가짜 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처세적인 내용들뿐이다. 이러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판단은 손해를 부른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하고 인맥은 이렇게 넓혀라… 이렇게 그들이 가릋치는 것은 하나같이 가치를 판단하는 기술적인 방법뿐이다. 그들은 인간과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몸의 감각이나 관능을 저질스럽거나 부도덕한 것, 또는 우리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 단순한 뇌의 화학적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멀리하지 마라. 자기의 감각을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 인간은 신체의 감각과 관능을 예술로 승화시켜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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